전체 글263 이익의 역사관과 실학사상 - 역사 속 현실 개혁의 사유를 찾다 이익은 현실 문제 해결을 위해 역사를 바라본 실천적 지식인이었다조선 후기 대표적인 실학자 이익은 역사를 단순히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현재 사회의 병폐를 진단하고 개혁의 방향을 모색하는 실천적 도구로 여겼다. 그는 당시 조선 사회의 여러 문제들—양반 중심의 폐쇄적 신분제, 토지의 불균형한 소유 구조, 농민의 궁핍한 생활 등—에 깊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현실에 맞는 제도적 대안을 모색하였다. 그의 저서 『성호사설』, 『곽우록』 등에는 역사에 대한 해석뿐 아니라 사회 개혁론이 폭넓게 담겨 있으며, 그는 특히 역사의 순환과 흥망성쇠를 단순한 운명론이 아닌 제도와 인간 행위의 결과로 해석하였다. 이익은 기존 성리학의 형이상학적 세계관에 얽매이지 않고, 역사적 사실 속에서 인과 관계를 .. 2025. 8. 22.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고려 지식인의 역사 인식 - 유교적 질서와 통치 이념의 반영 삼국사기는 유교적 시각에서 재구성된 첫 본격 정사였다12세기 고려 인종 대에 편찬된 『삼국사기』는 한국사에서 가장 오래된 정사(正史)로, 김부식이 중심이 되어 집필한 역사서다. 이는 이전까지 구전이나 민간 설화 중심으로 전해지던 고대 삼국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기록한 첫 시도였으며, 당시 고려 지식인의 역사 인식과 정치 이념이 뚜렷이 반영된 결과물이었다. 김부식은 유교적 질서를 근간으로 삼아, 국가의 통치 질서를 정당화하고 왕조의 권위를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삼국사기』를 편찬하였다. 그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역사를 정치 중심으로 서술했으며, 특히 신라를 중심으로 역사를 전개하면서 통일의 정통성을 강조하였다. 불교나 민간 신앙에 관한 내용은 가능한 배제하거나 축소하고, 왕과 대신들의 정치적 행위, 충신.. 2025. 8. 21. 백남운의 사회경제사학 - 식민사관을 넘어서려는 학문적 투쟁 조선사 연구의 식민주의적 왜곡에 맞서 백남운은 새로운 틀을 제시했다일제 강점기, 조선의 역사는 일본 제국주의의 정당화를 위한 수단으로 왜곡되었다. 이른바 식민사관은 조선이 자생적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외부의 힘에 의해 끌려 다닌 수동적 존재로 묘사하며, 일제의 통치를 문명화 사명으로 포장하였다. 이러한 역사 해석에 맞서 백남운은 마르크스주의에 기반한 사회경제사학을 통해 조선사의 독자적 발전 가능성을 입증하려 하였다. 그는 조선 역시 보편적인 역사 발전 단계를 밟아 왔으며, 원시공동체 → 노예제 → 봉건제라는 구조 속에서 사회경제적 변화가 꾸준히 이루어졌다고 주장하였다. 이는 조선이 '정체된 사회'라는 식민사학의 핵심 논리를 부정하는 동시에, 역사 발전의 보편성을 조선사에 적용함으로써 민족사의 자율성을 강조.. 2025. 8. 21. 혜강 최한기의 사상과 근대적 세계관 - 기학과 기철학을 통해 본 조선의 근대성 최한기는 전통을 넘어서려 한 조선 후기의 사상가였다19세기 조선은 내외부적으로 격동의 시기였다. 세도 정치로 인해 중앙 권력은 부패했고, 민중은 빈곤과 삼정의 문란에 시달렸다. 동시에 서양의 문물이 점차 유입되면서 새로운 세계관이 필요하게 되었지만, 조선의 보수적인 성리학 체제는 이를 포용하기 어려운 구조였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등장한 사상가가 바로 혜강 최한기였다. 그는 유교적 소양을 지닌 학자였지만, 기존 성리학의 형이상학적 체계에 한계를 느끼고 실사구시적이고 과학적인 세계관을 추구하였다. 그의 사상은 단순한 철학에 머무르지 않고, 자연과학, 지리학, 정치, 윤리, 심지어 경제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분야를 포괄하며 조선에서 보기 드문 종합적 지식인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최한기는 ‘기(氣)’를.. 2025. 8. 21. 한말 의병운동의 전개와 역사적 의미 - 민중이 일으킨 자주 독립의 불꽃 의병은 갑오개혁과 을미사변 이후 민중의 분노에서 시작되었다19세기 말 조선은 외세의 침탈과 내부 개혁 실패로 극심한 혼란에 빠져 있었다. 특히 1894년의 갑오개혁은 일본의 강요에 의해 진행된 측면이 강했으며, 왕권 약화와 전통 질서의 붕괴를 초래했다. 이어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을미사변)은 조선 민중의 분노를 폭발시켰고, 일본에 대한 적개심은 극에 달하게 된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등장한 것이 바로 의병이었다. 초기의 의병은 유생과 양반 출신 지도자들이 중심이 되었으며, 충군애국의 사상을 바탕으로 왕실 수호와 외세 축출을 외쳤다. 1895년의 을미의병은 비교적 자발적이며 산발적인 형태로 이루어졌으나, 전국적으로 확산되며 일제의 지배에 대한 첫 조직적 저항의 불씨를 당겼다. 이들은 전.. 2025. 8. 21. 홍경래의 난과 조선 후기 사회의 모순 - 민중 봉기의 뿌리와 파장 지방 차별과 세도 정치가 봉기의 불씨가 되었다조선 후기, 특히 19세기 초에 이르러 조선 사회는 극심한 모순에 직면해 있었다. 정치적으로는 안동 김씨, 풍양 조씨 등 특정 세도가문이 정권을 독점하면서 세도 정치가 만연했고, 이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탐관오리를 지방에 파견하며 민중의 삶을 더욱 피폐하게 만들었다. 경제적으로는 삼정의 문란—전정, 군정, 환곡의 부패—이 농민들의 생존을 위협하였고, 물가 상승과 기근, 전염병 등의 재해도 반복되며 민심은 점점 피폐해졌다. 여기에 지방차별 문제까지 더해졌다. 평안도 지역은 조선 중앙 권력으로부터 지속적인 차별을 받아왔으며, 과거 시험 응시 기회조차 제대로 주어지지 않았다. 이 같은 불평등은 지방 지식인과 하층민들의 분노를 증폭시켰고, 이러한 상황에서 평안도 양.. 2025. 8. 21. 이전 1 ··· 14 15 16 17 18 19 20 ··· 4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