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263 로마법의 유산 - 서양 법제도의 기초가 되다 로마법은 공화정과 제정 초기부터 정교하게 발전해왔다고대 로마는 단순한 군사력만이 아닌, 정교한 법체계로 제국을 유지하고 확장한 국가였다. 기원전 5세기경 제정된 ‘12표법’은 로마 최초의 성문법으로, 귀족과 평민 간의 법적 불평등을 조율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였다. 이후 로마는 공화정과 제정 시대를 거치면서 계약법, 재산법, 형법 등 다양한 분야에서 법을 체계화하였고, 이는 정복지에도 적용되어 광대한 제국을 하나의 질서 아래 유지할 수 있게 했다. 특히 법률가 계층의 등장과 이들이 쓴 판례, 해석, 주석들은 로마법의 발전을 비약적으로 이끌었고, 단순한 규율이 아닌 이론적 기초와 논리적 정당성을 갖춘 법학의 형태로까지 나아가게 했다. 이는 단순한 실용적 목적을 넘어서, 정의와 합리성을 중시하는 로마인의 법철.. 2025. 8. 24. 화폐의 역사 - 교환수단의 진화와 문명의 발달 화폐는 인류의 교환 방식에서 비롯된 사회적 약속이었다초기 인류 사회에서 경제 활동은 주로 물물교환을 통해 이루어졌다. 하지만 물물교환은 필요한 물건이 반드시 상대에게 있어야 하는 ‘쌍방 필요’라는 제약이 있었고, 이로 인해 거래의 효율성이 떨어졌다. 이러한 비효율을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화폐다. 최초의 화폐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금속이나 종이가 아니라, 조개껍데기, 소금, 옷감, 곡물 등 일상생활에서 가치 있다고 여겨졌던 재화들이었다. 이들은 일정한 가치와 희소성을 지니며 비교적 오래 보관할 수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교환의 매개체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물품 화폐는 점차 금속 화폐로 대체되는데, 그 이유는 금속이 휴대성이 좋고, 단위화와 가치 저장의 기능을 충실히 수행했기 때문이다. .. 2025. 8. 24. 천주교의 전래와 박해 - 신앙과 조선 유교 질서의 충돌 천주교는 조선 지식인들의 자발적 수용으로 시작되었다조선에서 천주교의 전래는 다른 외래 종교와 달리 상류층 지식인들의 주체적인 선택에 의해 시작되었다. 17세기 말~18세기 초에 걸쳐 조선의 유학자들이 중국 연경(지금의 베이징)에 사절로 다녀오면서 천주교 서적과 교리를 접하게 되었고, 이를 조선의 유교 질서와 비교하며 새로운 사상적 대안으로 받아들였다. 대표적으로 이승훈, 권철신, 정약용 등의 실학자들이 천주교 사상을 깊이 탐구하였으며, 특히 인간의 평등성과 영혼 불멸, 구원 사상은 조선의 위계적인 신분제와 충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새로운 도덕적 통찰을 제공해 주었다. 1784년 이승훈이 연경에서 세례를 받고 귀국함으로써 조선 천주교는 공식적인 신앙 공동체의 형태로 태동하게 되었고, 이후 성경과 교리서의 번.. 2025. 8. 22. 조선의 화폐제도 변화와 경제구조의 재편 - 상평통보에서 당백전까지 조선 전기에는 물물교환 중심의 교환경제가 화폐경제로 전환되기 시작했다조선 초기의 경제 체제는 기본적으로 자급자족과 물물교환 중심의 농업 경제 구조였다. 화폐는 존재했지만 유통 범위가 매우 제한적이었으며, 대부분의 거래는 곡물이나 직물, 금속 같은 실물 교환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농업 생산량이 증가하고 지역 간 상업이 확대됨에 따라, 교환의 수단으로서 화폐의 필요성이 점차 커지게 되었다. 이에 따라 조선 정부는 고려 말부터 사용되던 저화와 같은 지폐를 이어받거나, 명나라 동전을 일부 유통시키는 방식으로 화폐제도를 실험하였다. 하지만 지폐는 위조 문제와 신뢰 부족으로 인해 실패하였고, 결국 동전 중심의 화폐 정책으로 방향을 전환하게 된다. 조선 전기의 화폐정책은 통일성과 일관성이 부족했.. 2025. 8. 22. 조선의 서원과 향촌 사회 - 사림의 권위와 지역 질서의 중심 서원은 교육기관이자 사림의 정치적 기반으로 기능했다조선 중기 이후 지방 사회의 핵심 공간으로 자리 잡은 서원은 단순한 교육기관을 넘어 사림 세력의 정치적, 사회적 기반이 되었다. 원래 서원은 성리학적 학문을 연구하고 지역 인재를 교육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되었으며, 최초의 서원인 백운동서원은 주세붕이 안향을 기리며 1543년에 설립하였다. 이후 사림 세력은 전국 각지에 서원을 건립하며 향촌 사회에서의 영향력을 강화했고, 왕으로부터 사액(賜額)을 받아 국가의 공식적 인정을 받은 서원은 면세 특권과 토지 소유 등 실질적인 권력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서원은 사림이 중앙 정계에서 축출된 이후에도 지방에서 독자적인 권위체계를 유지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으며, 성리학적 질서를 지역 사회에 내재화하는 데 결정적인 .. 2025. 8. 22. 강화도 조약과 근대 국제질서의 충돌 - 조선의 문호 개방과 주권 문제 강화도 조약은 조선과 일본 사이 최초의 근대적 조약이었다1876년 체결된 강화도 조약은 조선이 외국과 맺은 최초의 근대적 조약으로, 일본과의 외교 관계 수립을 알리는 사건이자 근대 국제질서와의 본격적인 충돌의 시작이었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 군사력과 산업력을 빠르게 키우며 조선을 자국의 세력권으로 편입시키고자 했고, 운요호 사건을 빌미로 무력을 행사하며 조선을 협박했다. 조선 정부는 전통적인 화이질서 속에서 사대 외교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일본의 무력 시위 앞에서 결국 외교적인 대응 능력을 잃은 채 조약 체결에 이르게 된다. 이 조약은 명목상으로는 '평등한 수호통상조약'이었지만, 실제로는 일본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불평등 조약이었다. 특히 치외법권의 부여, 해안 측량권 인정, 개항장 설정 등은 조선의.. 2025. 8. 22. 이전 1 ··· 13 14 15 16 17 18 19 ··· 4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