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품제는 혈통 중심의 신분제를 제도화하여 개인의 사회적 상승을 차단했다
신라의 골품제는 고대 국가 체제 중에서도 유독 강력하게 계층 구조를 고착화시킨 제도로 평가된다. 이 제도는 성골, 진골, 6두품부터 1두품까지의 품계로 사람들을 나누었으며, 그 기준은 출신 혈통에 있었다. 특히 성골은 왕족 중에서도 순수한 왕통 혈통만이 속할 수 있었고, 진골은 왕족이지만 혼혈이나 측계혈통을 지닌 이들이 포함되었다. 이처럼 골품제는 출신에 따라 정치적, 사회적 기회를 철저히 차별화함으로써 권력 접근 자체를 제도적으로 통제했다. 개인의 능력이나 공로보다는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신분이 그 사람의 인생을 결정하는 구조였고, 이는 신라 사회 전반에 정체성과 불평등 구조를 심화시켰다. 특히 왕위 계승과 고위 관직 진출은 성골과 진골에게만 허용되었으며, 다른 골품은 일정 직위 이상으로는 결코 오를 수 없었다. 이러한 구조는 사회 내 상향 이동의 가능성을 원천 차단했고, 정치와 행정 시스템을 소수 계층에 집중시켜 권력 독점을 공고히 하였다.
골품제는 관직 제도와도 연동되어 일상적인 삶의 질도 계층에 따라 달라지게 했다
골품제의 영향력은 단순히 왕위 계승이나 귀족 정치에 국한되지 않았다. 관등 승진 제한은 물론이고, 입을 수 있는 옷의 색상, 집의 규모, 사용할 수 있는 수레나 그릇의 재질까지도 골품에 따라 엄격하게 구분되었다. 예를 들어 진골은 6관등 이상의 고위직에 오를 수 있었지만, 6두품은 최고로 오를 수 있는 관등이 6관등으로 제한되었고, 그 이하 두품은 그보다 더 낮은 직위만 가능했다. 이와 같이 관등의 한계는 사회적 상승의 기회를 박탈하는 역할을 했으며, 실질적으로는 일생 동안 속한 신분의 틀 안에서만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을 강요했다. 또한 혼인 역시 골품 간 혼합을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방식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혈연을 통해 계층을 바꾸는 일조차 불가능에 가까웠다. 따라서 골품제는 계층 간 경계의 유연성을 제거하여, 신라 사회를 폐쇄적이고 고착된 구조로 만드는 데 기여했다. 이러한 구조는 장기적으로는 인재의 활용을 제약하고, 사회 전체의 역동성을 감소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
골품제의 경직성은 신라 말기 사회 불안을 야기하는 원인이 되었다
골품제는 초창기에는 왕권 강화와 귀족 질서 유지에 기여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경직성이 사회 발전의 걸림돌로 작용하게 되었다. 특히 중하위 두품 출신자들 중에는 문무를 겸비하고 뛰어난 역량을 갖춘 이들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신분 제한으로 인해 국가의 핵심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없었다. 이는 인재의 낭비로 이어졌고, 점차 불만 세력이 확산되면서 사회 내부의 불안 요인이 되었다. 더불어 6두품 출신의 지식인 계층은 유학을 통해 새로운 사상과 정치 체계를 추구했지만, 이들의 목소리는 지배층에 의해 억압되었고, 이러한 갈등은 후삼국 시대의 분열로 이어지는 중요한 단초가 되었다. 결국 골품제는 단기적으로는 왕권 중심의 체제를 유지하는 데 성공했지만, 장기적으로는 사회의 유연성과 개방성을 해치며 내부 붕괴를 초래한 제도였다. 조선시대의 과거제와 같은 능력 중심의 제도와 비교해보면, 골품제는 고대의 신분제가 지닌 한계를 명확히 드러내며, 신라의 멸망 과정에서도 주요한 역사적 요인으로 작용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