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제국주의는 단지 영토 확장의 차원을 넘어, 동아시아 전체에 걸친 군사적 침략과 식민 통치를 통해 수많은 국가와 민족의 역사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은 서구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 근대화와 군사력을 강화하며 제국주의 노선을 걷기 시작했고, 그 첫 번째 희생양이 된 것은 조선이었다. 1894년 청일전쟁, 1905년 러일전쟁을 거치며 일본은 한반도에 대한 지배권을 강화했고, 결국 1910년 조선 병합을 통해 한국을 식민지로 삼았다. 이후 만주사변(1931)과 중일전쟁(1937), 태평양전쟁(1941) 등으로 확장된 일본의 침략은 중국 대륙과 동남아시아를 포함한 광범위한 지역에서 이루어졌으며, 이 과정에서 수많은 민간인이 학살, 강제 노동, 성 착취의 피해를 입었다. 일본 제국주의는 피지배 민족에게 물리적 고통뿐 아니라 문화적 말살, 언어 강요, 역사 왜곡 등을 통해 정체성과 자존감을 파괴하려 했으며, 이는 단지 과거의 일이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이어지는 정치적·사회적 갈등의 씨앗으로 남아 있다. 특히 일본 정부의 전쟁 책임에 대한 애매한 태도, 교과서 왜곡,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은 피해국 국민들의 기억을 자극하며 동아시아의 화해를 어렵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본 글에서는 일본 제국주의가 어떻게 동아시아를 침략하고 지배했는지, 그 방식과 특징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그러한 통치의 유산이 오늘날까지도 어떻게 남아 있으며 어떤 식으로 기억되고 있는지를 고찰하고자 한다.
무력 침략과 식민 통치의 이중 구조
일본 제국주의는 무력 침략과 그에 따른 식민 통치를 통해 동아시아에서 자신의 패권을 구축하고자 하였다. 조선에 대한 침략은 무장한 정복이 아니라 점진적이고 법제화된 방식으로 진행되었으며, 이는 명치유신 이후 일본이 추구한 '문명 개화'라는 명분 아래 철저히 준비된 식민지화 전략의 일환이었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로 외교권을 박탈한 데 이어, 1910년 한일합병조약을 통해 조선을 공식적으로 병합하였고, 이후 조선총독부를 설치하여 군인 출신 총독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였다. 일본은 조선 내의 정치 제도, 교육, 언론, 경제 전반에 걸쳐 자국의 제도를 이식하였으며, 이를 통해 자발적 동화를 유도하려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실질적으로는 폭압적인 감시와 통제, 민족 말살 정책을 동반하였고, 조선어 사용 금지, 신사참배 강요, 창씨개명 등은 조선인의 문화와 정체성을 부정하는 수단이었다. 만주사변 이후 일본은 만주국을 수립하고 괴뢰 정권을 세워 자원을 수탈하였으며, 중일전쟁 기간 동안에는 난징 대학살과 같은 대규모 민간인 학살이 벌어졌다. 또한 수많은 중국인과 조선인이 군수 공장으로 강제 동원되었고, 특히 ‘위안부’ 문제는 일본 제국주의의 폭력성과 여성에 대한 성착취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기록된다. 이러한 침략과 통치 방식은 단순한 군사 점령이 아니라, 체계적인 제국 운영 전략으로서의 식민주의적 사고를 반영하며, 피지배 민족에게는 단절된 역사와 파괴된 공동체를 남겼다. 일본은 이러한 통치 구조 속에서 자국 내 근대화를 가속화하며 제국의 경제 기반을 확충하였고, 아시아 전체를 ‘대동아공영권’이라는 허울 아래 묶어 자국의 침략을 정당화하려 하였다. 그러나 실상은 식민 지배를 통해 자원을 수탈하고, 군사적 전략 요충지를 확보하며, 피지배 민족의 인권과 자유를 철저히 억압하는 제국주의의 전형적 사례였다.
역사 왜곡과 기억의 정치, 그리고 화해의 조건
일본 제국주의의 유산은 식민지 피해 국가들에게 단지 경제적 손실과 정치적 후진성을 초래한 것에 그치지 않고, 오늘날까지도 민족 감정과 외교 관계의 핵심 쟁점으로 남아 있다. 특히 일본 정부와 정치 지도자들이 보이는 역사 인식의 왜곡은 이러한 유산의 청산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일본의 일부 정치인은 과거 침략과 식민 지배를 ‘근대화의 수단’으로 포장하거나, 위안부와 강제 징용을 ‘자발적 노동’ 또는 ‘계약 관계’로 묘사하며 역사적 책임을 회피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일본 내 보수 언론과 교과서는 과거사를 축소하거나 왜곡하여 기술하고 있으며, 이는 일본 국민의 역사 인식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는 전범을 ‘영웅’으로 기리는 행위로 간주되며, 한국과 중국 등 피해국 국민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피해자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나 배상이 지연되거나 불충분하게 이루어지면서, 화해를 위한 진정성 있는 노력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 제국주의의 유산은 단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의 외교적 갈등이자 민족 정체성의 핵심 문제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동아시아의 평화와 협력, 공동 번영을 위해서는 이 같은 역사적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진실을 토대로 한 상호 이해와 치유가 필요하다. 일본 정부는 단순한 사과나 배상을 넘어, 공교육과 대중 담론 속에서 식민주의의 본질과 그 피해를 명확히 가르치고, 책임 있는 자세를 취함으로써 국제 사회에서의 신뢰를 회복해야 할 것이다. 반면 피해국 역시 피해의식에만 머무르기보다, 객관적인 역사 연구와 교육을 통해 다음 세대에게 정확한 기억을 전달하고, 이 기억을 미래를 위한 교훈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제국주의의 상처는 시간이 지난다고 사라지지 않으며, 그 기억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동아시아의 정치 문화와 국제 질서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일본 제국주의의 동아시아 침략과 식민 통치는 한 시대의 폭력이자, 그 후세들이 짊어져야 할 역사적 책무를 함께 규정하는 거울이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