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9년 미국 뉴욕 증권시장에서 시작된 대공황은 단순한 경기 침체를 넘어 세계 자본주의 체제를 뿌리부터 흔든 사건이었습니다. 실업과 파산, 생산 과잉과 소비 부족의 악순환 속에서 자본주의 경제는 기능을 마비당하였고, 이에 따라 자유방임주의에 기반한 고전경제학의 한계가 명확히 드러났습니다. 이 시기 영국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제시한 새로운 경제 이론은 시장의 자율조정에 의존하던 기존의 통념을 뒤엎으며, 정부의 적극적 재정정책과 수요 관리의 필요성을 강조하였습니다. 이후 케인스주의는 전 세계 주요 국가의 경제정책에 도입되며 현대 복지국가의 기초를 형성하는 이론적 토대가 되었고, 자본주의 시스템의 회복을 견인하는 핵심 역할을 수행하게 됩니다.
1929년 대공황의 원인과 세계 경제에 미친 충격
대공황의 직접적인 계기는 1929년 10월 24일 뉴욕 증권거래소의 주가 대폭락이었지만, 그 근저에는 구조적인 원인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과잉 생산과 소득 불균형, 농업 불황, 과도한 주식 투기와 신용 팽창은 미국 경제의 불안정성을 심화시켰고, 세계 무역 의존도가 높은 경제 구조는 하나의 충격이 세계로 급속히 전파되는 환경을 만들었습니다. 미국의 금융위기는 곧 전 세계로 확산되며, 수많은 은행과 기업이 파산하고, 세계 교역량은 반 토막이 나며 실업률이 급등하였습니다. 독일과 같은 전후 복구 중인 국가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고, 라틴아메리카나 아시아 지역 역시 수출 감소로 극심한 경기 침체를 겪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충격은 기존의 자유시장 질서에 대한 근본적 의문을 불러일으키며, 보다 적극적인 경제 운영 방식에 대한 요구로 이어졌습니다.
케인스주의의 등장과 경제정책의 전환
기존 고전경제학은 경제가 스스로 균형을 회복할 것이라는 전제를 바탕으로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할 것을 주장하였지만, 대공황 시기의 현실은 이러한 이론과 전혀 달랐습니다. 이에 반해 케인스는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1936)에서 유효수요의 부족이 경제 침체의 핵심 원인이라고 분석하며, 정부가 적극적인 재정 지출을 통해 총수요를 증대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는 일자리 창출, 인프라 건설, 사회보장 지출 확대 등을 포함하는 확장적 재정정책의 이론적 기반이 되었으며,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정책에 반영되어 본격적인 국가 개입 경제가 시작됩니다. 뉴딜 정책은 대규모 공공사업과 실업자 고용 창출, 사회보장 제도 도입을 통해 경제 회복을 도모하였고, 그 효과는 제한적이었지만 정치·사회적으로는 정부의 책임과 역할에 대한 인식을 전환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후 유럽 각국과 일본 등도 케인스주의 정책을 차용하며 복지국가 모델을 정립하게 됩니다.
케인스주의의 확산과 현대 경제에 끼친 영향
케인스주의는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세계 경제 체제에서도 중심적 이론으로 자리 잡습니다. 전쟁 후 각국 정부는 전시경제에서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완전 고용과 경기안정을 목표로 한 적극적인 재정 및 통화정책을 추진하였고, 이는 1950~60년대의 이른바 '황금기' 경제성장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복지 제도 확충, 조세 정책 개혁, 노동시장 안정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정부의 기능은 확대되었고, 이는 시장에 대한 불신과 함께 공공부문의 신뢰를 높이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동시에 국제 통화 질서에서는 브레튼우즈 체제가 등장하여 고정환율과 금융 통제를 통한 안정적 국제무역 체계가 구축되었습니다. 그러나 1970년대 들어 스태그플레이션과 같은 새로운 경제 문제에 직면하면서 케인스주의는 위기를 맞이하고, 그에 대한 비판으로 신자유주의가 부상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20년 코로나 팬데믹 이후에도 다시금 재정지출 확대와 정부 개입의 필요성이 부각되며, 케인스주의는 여전히 경제정책의 중요한 패러다임으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대공황은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신뢰를 흔드는 위기였지만, 케인스주의는 그 체제를 보완하고 유지할 수 있는 이론적·정책적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현대 자본주의의 재구성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