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 러시아 제국은 표면적으로는 광대한 영토와 막강한 군사력을 자랑하는 대국이었지만, 내부적으로는 농노 해방 이후의 혼란, 산업화의 불균형, 정치적 억압, 제1차 세계대전의 참화 속에서 극심한 위기를 겪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1917년 두 차례의 혁명이 연속적으로 일어나며 수백 년간 지속된 로마노프 왕조가 붕괴하고,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가 탄생하는 대전환이 이루어졌습니다. 러시아 혁명은 단순한 정권 교체를 넘어 자본주의와 대립하는 새로운 이념의 출현이자, 20세기 세계 질서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사건으로 평가됩니다.
제1차 세계대전과 제정 러시아 체제의 붕괴
러시아는 19세기 후반부터 급속한 산업화를 추진하였으나, 이는 도시노동자와 농민의 삶을 안정시키기보다는 오히려 사회적 불만을 키우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차르 니콜라이 2세는 전제정치를 고수하며 의회 정치와 시민권 확대 요구를 억압하였고, 1905년 혁명 이후에도 근본적인 개혁에는 미온적 태도를 보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며 러시아는 연합국 측으로 참전하게 되었고, 무능한 군사 지휘와 병참 부족, 경제 파탄으로 인해 전선과 후방 모두에서 국민의 불만이 폭발하게 됩니다. 특히 식량 부족, 노동자 파업, 군 내부의 동요가 심화되며, 1917년 3월(율리우스력 2월) 페트로그라드에서 대규모 시위가 발생하고 군대가 이에 동조하면서 로마노프 왕조는 결국 퇴위하고, 임시정부가 수립되기에 이릅니다. 이 사건은 2월 혁명으로 불리며, 제정 러시아의 종말을 알리는 순간이자 혁명의 전반부를 형성합니다.
볼셰비키의 권력 장악과 10월 혁명
2월 혁명 이후 수립된 임시정부는 민주주의와 개혁을 약속했지만, 전쟁 지속과 농지 문제, 식량 공급 등 핵심 현안에 대한 실질적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였습니다. 이 틈을 타고 레닌이 이끄는 볼셰비키는 “평화, 빵, 토지”를 구호로 삼아 민중의 지지를 획득하며 세력을 확장해 나갔습니다. 특히 소비에트(노동자·병사 평의회) 조직을 활용하여 하층민의 정치 참여를 조직화하였고, 1917년 10월(그레고리력 11월)에 무장 봉기로 임시정부를 전복하고 권력을 장악하게 됩니다. 이른바 10월 혁명은 역사상 최초로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주도하여 정권을 수립한 사례로,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사회주의 이념이 현실 정치에서 구현된 첫 사건이었습니다. 이후 러시아는 볼셰비키 중심의 일당독재 체제로 전환되며, 레닌은 신경제정책(NEP)을 통해 시장 일부를 허용하면서도 공산주의 체제를 유지하고자 하였습니다. 반면, 반볼셰비키 세력과 외세 개입으로 인해 내전이 발발하고 수백만 명이 희생되는 혼란이 이어졌습니다.
소련의 성립과 세계사적 전환점으로서의 의의
1922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소련, USSR)이 정식 수립되면서, 러시아 혁명은 단순한 정권교체를 넘어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 건설이라는 역사적 성과로 결실을 맺었습니다. 이는 마르크스주의 이론이 실제 국가 체제에 적용된 최초의 사례였으며, 자본주의와는 전혀 다른 노선을 제시한 이념 실험의 시작이었습니다. 이후 소련은 계획경제를 기반으로 한 산업화, 무상 교육과 의료, 여성의 사회 참여 확대 등 다양한 개혁을 추진하며 새로운 국가 모델을 구축하려 하였습니다. 동시에 제국주의와 자본주의 세계질서에 대한 비판적 대응으로 국제 공산주의 운동을 주도하게 되었으며, 이는 냉전의 뿌리로 이어지는 세계사적 전환점이 됩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일당 독재와 언론 통제, 숙청과 강제노동, 개인 숭배 등 사회주의 체제의 한계도 드러났으며, 이는 훗날 동유럽 위성국가들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혁명은 민중의 참여로 새로운 사회 체제를 시도한 대담한 실험이었으며, 오늘날에도 정치적 이상과 현실 사이의 긴장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중요한 역사적 장면으로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