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족 중심의 권력 구조가 독특한 문화 양식을 형성했다
고려는 성종 대 이후 유교 이념을 국가 운영의 근간으로 삼았지만, 실제 정치와 사회 문화는 전통적인 귀족 중심 체제를 기반으로 전개되었다. 특히 문벌귀족이라 불리는 일부 가문이 대대로 고위 관직을 독점하며, 정치뿐만 아니라 사회, 경제, 문화 전반에 걸쳐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들은 불교에 기반한 종교적 후원을 통해 사찰을 건립하고, 석탑과 불상 등 예술 작품을 후원함으로써 신앙과 권위의 정당성을 함께 확보하고자 하였다. 또한 이들의 저택과 묘지는 화려한 조형물로 장식되어 있었고, 이는 귀족적 위상을 과시하는 동시에 당시 장인들의 기술 수준을 반영하는 문화적 산물이었다. 고려의 귀족문화는 단순히 사치나 향유의 측면을 넘어서, 지배 권력의 형성과 밀접하게 맞물려 있었고, 그 결과 문화는 정치의 연장이자 권위의 시각적 표현 수단이 되었다.
예술과 문학은 귀족들의 사유공간에서 탄생하고 전파되었다
고려시대 귀족문화의 또 다른 특징은 예술과 문학이 개인의 취미나 교양 차원을 넘어 사회적 신분과 권위를 드러내는 수단으로 기능했다는 점이다. 귀족들은 불교 경전을 필사하거나, 시문을 짓고, 서화를 감상하는 활동을 통해 자신들의 학문적 수준과 문화적 교양을 표현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강동의 10인>처럼 지방관으로 파견된 사대부들이 모여 문학을 논하고 시를 교환하던 모습에서 볼 수 있듯, 문학 활동은 지배층 내 교류와 정치적 연대를 형성하는 데에도 기여했다. 또한 고려청자와 같은 도자기 예술은 단순한 생활 용품이 아니라, 귀족들의 안목과 미적 취향이 반영된 고급 공예품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이는 장인의 기술과 귀족의 후원이 결합된 결과로, 당시 고려의 도자기 공예가 동아시아 무역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즉, 예술과 문학은 귀족 사회 내부의 정체성과 위계를 유지하는 동시에 외부 세계에 고려 문화의 품격을 보여주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고려 귀족문화는 후대의 문화 정체성에도 깊은 영향을 끼쳤다
고려시대 귀족문화는 단순히 특정 계층의 문화 향유에 그치지 않고, 이후 조선시대 사대부 문화의 형성과 문화유산의 계승에도 깊은 흔적을 남겼다. 특히 서화, 금속 공예, 도자기, 불교 미술 등의 영역에서 고려의 양식은 단절되지 않고 조선 초기까지 이어졌으며, 일부는 오히려 조선의 문화적 기반을 이루는 요소로 변모하였다. 조선시대 사대부가 중시한 문인화의 형식이나 시문 중심의 교류문화는 그 뿌리를 고려 귀족사회의 예술 활동에서 찾을 수 있다. 동시에 귀족문화의 사치와 폐해는 조선 건국 세력에게 반면교사로 작용하여, 절제와 검소를 강조하는 유교적 문화로 전환하는 데 영향을 주기도 하였다. 이처럼 고려의 귀족문화는 단순한 사라진 유산이 아니라, 한국 전통문화의 형성과 계승, 그리고 반성과 전환의 기점으로서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결국 귀족문화는 권력과 예술이 만나는 지점에서, 고려라는 국가의 정체성과 그 유산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핵심 요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