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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의 역사 - 동양과 서양에서 문서를 바라보는 시선은 달랐다

by HomeCareHacks 2025. 9. 10.

문서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권력과 질서를 구성하는 도구 였다.

인류는 언어를 문자로 변환하는 순간부터 과거를 보존할 수 있는 도구를 손에 넣게 되었고, 이로써 기록은 단순한 정보의 전달을 넘어 사회적 권위와 제도화의 기반이 되었다. 동양에서 문서와 기록은 주로 통치자의 통치 정당성을 보장하고 행정의 연속성을 담보하는 수단으로 기능했다. 예컨대 중국의 역사서인 『사기』와 『한서』는 단순히 사건을 나열한 것이 아니라, 통치자의 덕과 과오를 평가하고 후대 왕조가 선례로 삼아야 할 교훈을 전달하려는 의도가 강하게 내포되어 있었다. 조선에서도 실록과 승정원일기, 일성록과 같은 방대한 기록 시스템이 존재하였는데, 이는 왕이 죽은 뒤에도 그 통치가 평가되고 기록된다는 점에서 통치 권력을 스스로 견제하는 장치로 작용하기도 했다. 이러한 동양의 기록 문화는 문서의 생산과 보존이 공적 제도 안에서 정형화되어 있으며, 기록 그 자체가 권위의 상징이자 질서를 유지하는 장치였음을 잘 보여준다.

서양에서는 기록이 법과 계약, 개인 권리의 증거로 발전해 나갔다

반면 서양의 기록 문화는 공공 기록보다는 법률 문서, 재산 계약, 교회 문서 등 개인 혹은 공동체 간의 권리와 책임을 명확히 하기 위한 수단으로 더욱 발전했다. 고대 로마는 계약서, 유언장, 재판 기록 등 실용적 문서 문화를 발달시켰으며, 이는 후에 중세 유럽의 교회 문서와 세속 문서로 계승되었다. 중세 수도원에서는 연대기와 사본들이 만들어졌고, 이러한 기록은 단순한 연대적 사건 열거가 아닌, 신학적 해석과 교회의 정통성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기능하였다. 이후 르네상스를 거치며 개인의 기록이 중요시되기 시작했고, 근대에 들어와 시민사회가 형성되면서 기록은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보장하는 증거로서의 위상을 갖게 된다. 특히 영국의 국립공문서관이나 프랑스의 국가기록원은 행정문서뿐 아니라 시민들의 다양한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법적 기초로서의 기록 기능을 강화해 왔다. 이처럼 서양의 기록문화는 법적 정당성과 개인 권리 보호를 중심으로 발전하면서, 오늘날의 문서 중심 사회의 기초가 되었다.

오늘날의 기록문화는 동서양의 전통이 융합된 복합적 구조를 가진다

현대의 기록문화는 단지 국가나 개인의 정보 보존을 넘어서, 사회 전체의 기억을 형성하고, 정책 결정의 근거 자료로 활용되며, 나아가 디지털 아카이빙을 통한 인공지능 학습 자료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디지털 시대에는 문서가 물리적 공간을 초월하여 보존되고 공유될 수 있게 되었으며, 그에 따라 기록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졌다. 하지만 그 뿌리를 살펴보면 여전히 동양의 공적 통제와 위계적 기록 체계, 그리고 서양의 법적 증거성과 개인 중심 문서 문화가 공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컨대 오늘날 공공기록물 관리법은 정부의 기록을 제도적으로 보존하려는 동양적 전통을 이어받았지만, 동시에 정보공개청구제도나 개인정보 보호법은 시민의 권리 보호라는 서양적 법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처럼 현대 사회는 기록의 생산, 관리, 활용 방식에 있어 전통적인 구분을 넘어서고 있으며, 기록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단순히 과거를 보존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미래를 설계하는 데이터로서의 가치에 주목하고 있다. 따라서 기록의 역사를 돌아보는 일은 단지 과거를 되짚는 행위가 아니라, 우리가 현재와 미래를 어떻게 이해하고 구성할 것인가에 대한 사유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