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현제도는 조선의 지방 행정 운영의 기본틀이었다
조선은 건국 초기부터 전국을 행정적으로 체계화하고 중앙의 통제를 지방에까지 확대하기 위해 군현제도를 유지하고 발전시켜왔다. 조선 초기에는 고려 말의 혼란을 정리하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군현의 수를 정비하고, 각 군현에 지방관을 파견하여 행정과 치안을 책임지도록 하였다. 이러한 중앙 집권적 군현제도는 서울을 중심으로 8도의 도체제가 마련되면서 더욱 체계화되었고, 각 도 아래에는 군, 현, 면, 리 등의 계층이 존재했다. 특히 지방관은 임기제 관료로서 중앙 정부에서 파견되며, 조세 수취, 치안 유지, 재판, 인재 선발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러나 이 군현제도는 시간이 지나면서 고착화되고, 지방 양반 세력과 결탁하거나 권력 다툼의 중심이 되기도 하였다. 또한 지리적 요건이나 인구 변화에 따라 행정구역의 효율성이 저하되면서 군현제도의 재정비가 필요해졌고, 이는 조선 후기의 개편 작업으로 이어지게 된다.
조선 후기의 군현 정비는 지방자치 성격과 향촌 권력의 재편을 동반했다
17세기 이후 조선 사회는 정치적 안정과 인구 증가, 농업 생산력의 향상 등을 배경으로 지역 사회의 구조적 변화가 일어났다. 이에 따라 군현제도 역시 단순한 행정체계에서 지역 권력의 구도 변화와도 깊은 관련을 맺게 되었다. 특히 군현의 수가 지나치게 많아 행정 효율이 떨어지고, 인구나 세수 기준에 맞지 않는 군현이 존재하게 되면서 조정은 지속적으로 군현 통폐합을 시도하였다. 대표적으로 18세기 영조와 정조 대에 실시된 군현 통폐합 정책은 인구가 적은 속현을 중심 현에 합병하거나, 부역이나 세금 징수가 원활치 않은 군현을 폐지하는 형태로 나타났다. 이러한 정비는 단순한 행정 구역의 조정이 아니라, 향촌 권력의 이동과도 맞물려 있었다. 종래의 향리 중심 체제는 약화되고, 향약을 중심으로 한 양반들의 자치 운영이 강화되면서 지방의 실질적인 권력이 재편되었다. 이로 인해 지방 양반들의 세력화가 진행되고, 일부 지역에서는 중앙의 권위보다 지역 세력의 영향력이 더 크게 작용하는 사례도 생겨났다. 결국 조선 후기의 군현제도 변화는 중앙과 지방 간의 통치 구조에 실질적인 균열과 재조정을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다.
근대적 행정 체제로 가는 과도기로서 군현제도의 의미는 크다
조선 후기의 군현제도는 단순히 구시대의 잔재가 아니라, 근대 행정 체제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전환적 역할을 수행하였다. 19세기에 들어서며 세도 정치와 중앙 정부의 권위 약화로 인해 지방 통치는 더욱 분권화되었고, 이러한 경향은 결국 고종 대의 갑오개혁을 통해 행정제도 전면 개편으로 이어진다. 이 시기에 군현제도는 폐지되고, 일본식의 군·면 행정구역이 도입되며, 근대적인 지방 행정 체계가 정립된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의 토대에는 이미 조선 후기 수백 년 동안 시행된 군현제도의 운영 경험과 그 한계에 대한 인식이 자리하고 있었다. 특히 군현제도는 중앙 권력의 의도와 지역 사회의 현실 사이의 긴장 속에서 점진적으로 변화하며, 한국적 행정 체계의 역사적 연속성과 단절성을 모두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로 평가된다. 오늘날 우리가 접하는 지방자치제나 행정구역 체계도 이러한 역사적 흐름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점에서, 조선 후기 군현제도의 변화는 단지 고대의 행정 구조로만 볼 수 없는 현재적 의미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