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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실학은 사회 개혁과 학문적 현실주의를 추구한 사상 운동이었다

by HomeCareHacks 2025. 9. 7.

성리학 중심의 경직된 질서에 대한 비판에서 실학은 출발하였다

조선 후기의 실학은 기존의 성리학적 질서와 사대부 중심의 이념 체계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하였다. 조선은 건국 초기부터 성리학을 국가 이념으로 삼아 통치 질서를 정립하였고, 이는 18세기에 이르기까지 정치와 학문, 사회생활 전반을 지배하였다. 그러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며 성리학의 추상적 이념이 현실 문제 해결에 한계를 보인다는 인식이 확산되었고, 그 대안으로 ‘실사구시’의 입장을 견지한 실학이 등장하게 된다. 실학자들은 사회의 모순과 백성들의 생활 문제를 해결하려면 단지 경전을 해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현실을 조사하고 경험을 중시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들은 양반 중심의 위계 사회가 가진 모순, 토지 제도의 불합리함, 교육과 제도의 폐쇄성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를 학문적으로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려 하였다. 특히 실학은 단일한 사상 체계라기보다, 공통된 현실 지향성과 개혁 의지를 가진 다양한 흐름으로 나타났으며, 조선 후기의 사회 구조 변화와 맞물려 그 영향력을 점차 확장하게 된다.

실학은 경세치용과 이용후생이라는 두 방향으로 발전하였다

조선 후기 실학은 그 지향점에 따라 경세치용파와 이용후생파로 나눌 수 있다. 경세치용은 국가를 경영하고 사회를 다스리는 데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방안을 강조한 것으로, 대표적 인물로는 유형원, 이익, 정약용 등이 있다. 이들은 토지제도 개혁, 제도 개선, 인재 등용의 방식 등을 논의하며, 불합리한 사회 구조의 변화를 요구하였다. 유형원은 균전론을 통해 모든 국민에게 토지를 일정하게 분배하자는 이상을 제시했으며, 이익은 성호사설을 통해 역사, 경제, 자연과학 등 다양한 분야를 종합적으로 논하면서 시대의 문제를 파악하고자 하였다. 정약용은 목민심서, 경세유표 등을 통해 지방 행정의 개혁, 형벌과 군사 제도의 개선, 과학기술의 활용 등을 폭넓게 다루었다. 반면 이용후생파는 상공업의 진흥과 생산력 증대, 기술 개발에 주목한 실학의 한 갈래로, 유수원, 홍대용, 박지원, 박제가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들은 부국강병을 위해 농업뿐만 아니라 상업과 공업의 발달이 필수적이라고 보았고, 중국과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여 기술과 생산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처럼 실학은 현실을 직시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지향 아래, 학문적 다양성과 실천적 성격을 동시에 지니며 조선 후기의 사상계를 이끌었다.

실학은 조선의 개혁 사상에서 근대 지향으로 가는 이정표가 되었다

실학은 조선 후기 사회를 진단하고 개선 방안을 제시하려는 사상 운동이었을 뿐 아니라, 한국 근대 사상의 단초를 제공한 중요한 사유체계였다. 실학자들은 전통적 유교 윤리에 갇히지 않고, 사회를 구체적으로 관찰하고 분석하며, 이를 바탕으로 제도적 개혁과 과학 기술의 활용, 민본주의적 행정 등을 주장하였다. 특히 정약용은 수리 기술, 건축, 의학, 법제도 등에 걸쳐 실천 가능한 대안을 제시하면서 실학의 절정을 이룩하였다. 그는 유교적 이상과 현실 정치의 접점을 찾으려 하였고, 이러한 노력이 훗날 개화 사상과 개항기 개혁론의 사상적 기반이 되었다. 또한 실학자들은 서양의 과학과 지리 지식, 천문학에 주목하며 세계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혔고, 이는 조선이 점차 폐쇄적 질서에서 벗어나 새로운 문명과의 접촉을 모색하게 되는 전환점이 되었다. 물론 실학이 당대 사회를 획기적으로 바꾸지는 못하였으나, 그 사유의 틀은 조선 말기의 개화파와 근대화 세력에 의해 계승되었고, 한국 사상사의 맥락 속에서 실학은 전통과 근대 사이를 잇는 가교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실학은 현실 문제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실천적 해법 제시라는 점에서 지금까지도 주목받는 역사적 사유의 성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