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리학의 한계를 인식하고 등장한 실학은 시대 변화를 반영한 사상이다
조선 시대에 성리학은 국가 이념으로서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였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 경직성과 형식주의적 성향이 드러났다. 특히 양반 중심의 이념 체계는 점차 현실과 괴리되었고, 이를 비판하고자 한 지적 흐름이 실학으로 나타났다. 실학은 이름 그대로 ‘실사구시(實事求是)’, 즉 사실에 근거한 진리를 추구하며, 기존의 공리공론에서 벗어나 백성의 삶과 국가의 현실 문제에 주목하였다. 이는 17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에 걸쳐 형성된 새로운 학문 경향으로, 성리학의 틀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으면서도 그 내적 쇄신을 꾀하고자 하였다. 실학자들은 당시 조선 사회가 처한 경제적 피폐, 제도의 부조리, 농업 생산력의 정체 등을 직시하며, 이를 개선할 방안을 고안하였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관념보다는 실천, 고답적 학문보다는 현실 문제 해결을 중시하였고, 이는 곧 민생을 중심에 둔 사유 방식으로 발전해 나갔다. 실학의 등장은 조선 후기 사상계가 더 이상 정체되지 않고 변화를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었음을 보여주는 징표였다.
농업 중심의 중농학파와 상공업 중시의 중상학파는 실학의 두 축이었다
실학은 그 내부에서도 다양한 분파로 나뉘었는데, 대표적인 것이 중농학파와 중상학파이다. 중농학파는 농업을 경제의 근본으로 보고, 토지 제도의 개혁을 통한 백성의 생활 안정에 주목하였다. 유형원은 ‘균전론’을 통해 토지를 균등하게 분배하여 농민의 생계를 보장하고자 했으며, 이익은 ‘한전론’을 주장하며 토지의 매매를 제한하고 최소 생계 유지를 위한 토지를 보장하자고 하였다. 정약용 역시 ‘여전론’이나 ‘정전제’ 등 다양한 토지개혁론을 제시하면서, 백성의 생존과 국가의 경제 기반 강화를 동시에 도모했다. 반면 중상학파는 상공업을 육성하여 부국강병을 이루자는 입장에서 출발했다. 박지원은 청나라의 발달된 상업과 기술 문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으며, 박제가 역시 ‘북학의’를 통해 외국 문물의 적극적 수용과 상업 활성화를 강조하였다. 중상학파는 조선이 봉건적 경제 구조에서 벗어나려면 유통 구조를 혁신하고, 사농공상의 직업 차별을 타파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처럼 실학은 농업 중심이냐, 상공업 중심이냐에 따라 다양한 노선을 취했으나, 공통적으로는 조선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인식하고 그 해결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현실 개혁 지향적 사상이었다.
실학은 근대 지향적 사상으로 계승되며 역사 인식의 틀을 넓혔다
실학은 단순히 당시 조선 사회의 제도 개혁을 위한 방안 제시에 머무르지 않고, 이후 한국 근대 사상의 토대를 형성한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정약용의 행정 개혁론이나 법치주의 사상, 박제가의 국제 교류론 등은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사고였으며, 후대의 개화 사상이나 독립운동가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특히 실학자들은 역사의식에서도 기존의 왕조 중심 서술 방식에서 벗어나, 민중과 제도, 경제 구조 등을 포괄적으로 이해하고자 하였다. 안정복은 <동사강목>에서 정통론과 윤리적 서술을 기반으로 하되, 독자적 역사관을 제시했고, 이익은 역사에서 ‘도통’보다 ‘인정과 제도’의 변화를 중시하며 실증적 접근을 시도하였다. 이러한 실학의 역사관은 단순히 왕조의 흥망성쇠를 넘어, 민중의 삶과 사회 구조의 변동을 중요한 역사 서술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결과적으로 실학은 조선 후기의 지적 전환기를 대표하는 사상으로서, 학문적 깊이와 실천적 지향을 아우르며 전근대에서 근대로 이행하는 사유의 다리를 놓은 사상적 성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