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근대화론은 일제의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려는 논리다
식민지 근대화론은 일본 제국주의의 조선 지배가 결과적으로 조선을 근대화시켰다는 주장으로, 20세기 후반 일본 우익 학자들과 일부 경제사학자들에 의해 본격적으로 제기되었다. 이 주장은 철도, 공장, 금융 시스템, 근대 교육의 도입 등을 근거로 식민 지배가 조선의 경제 성장을 촉진하고 근대 사회로 나아가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식으로 구성된다. 하지만 이는 식민 지배의 본질과 목적을 의도적으로 은폐하는 매우 정치적인 해석이다. 일본의 조선 지배는 본질적으로 제국주의적 침탈이었으며, 조선의 자원과 노동력은 오로지 일본 본국의 산업과 전쟁 수행을 위해 착취되었다. 철도는 조선 내 물자 수송보다 일본으로의 수탈에 중점을 두었고, 교육은 황국 신민화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었으며, 산업화 역시 조선 내 자율적인 자본 축적이 아닌 일본 자본에 의존한 종속적 구조였다. 따라서 식민지 근대화론은 표면적인 통계나 인프라의 확장만을 근거로 식민 지배의 폭력성을 희석하려는 시도로 간주되어야 한다.
경제 성장의 외형만 강조하면 피지배자의 고통은 사라진다
식민지 근대화론은 대개 경제 통계나 산업 지표를 통해 논리의 정당성을 확보하려 하지만, 이러한 수치는 그 자체로 역사적 진실을 말해주지 않는다. 일제강점기 동안 조선의 총생산량이 증가하고, 일부 산업이 성장한 것은 사실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성장의 주체가 누구였고, 이익이 누구에게로 귀속되었는지를 살펴보면, 식민지 조선인의 삶은 오히려 피폐해졌다. 농민들은 수탈적인 지세 제도에 시달렸고, 노동자들은 낮은 임금과 장시간 노동, 인권 유린에 노출되어 있었다. 특히 일본의 전쟁 경제가 본격화된 1930년대 이후에는 조선인 노동자의 강제 동원과 여성의 정신대 참여 등 식민지 억압의 강도는 더욱 심화되었다. 근대화의 외형적 측면만 강조하면, 그 이면에 있던 폭력과 고통, 수탈과 저항은 사라진다. 이는 역사 서술에서 반드시 경계해야 할 방식이며, 단지 발전이라는 미명 하에 식민 지배를 미화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역사란 단지 수치와 시설이 아닌, 그 속을 살아낸 사람들의 경험과 기억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식민지 근대화론은 한국 현대사 인식에도 왜곡을 초래한다
식민지 근대화론이 갖는 또 다른 위험은 한국 현대사에 대한 왜곡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이론은 일제 강점기를 하나의 ‘도약의 계기’로 해석함으로써, 이후의 한국 근대화—특히 박정희 시기 산업화—를 일제 식민 체제의 연장선상으로 파악하게 만들 수 있다. 이는 식민지 시기의 저항과 독립운동, 민중의 자율적 근대화 노력, 해방 이후 한국 사회의 내부 동력을 축소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더욱이 이러한 논리는 과거의 식민 지배에 대한 일본의 책임 회피와도 맞물리며, 역사적 사죄나 반성의 동기를 약화시키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 실제로 일본의 우익 정치인들이 이러한 식민지 근대화론을 근거로 한국에 대한 진심 어린 사과를 회피하거나, 역사 교과서에서 침략을 '진출'로 서술하는 식의 왜곡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 역사학의 역할은 과거를 미화하거나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로부터 오늘의 교훈을 도출하고 기억해야 할 고통을 드러내는 데 있다. 식민지 근대화론은 이런 역사학의 기본 책무에 정면으로 위배되며, 따라서 철저한 비판과 반론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