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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사는 침묵한 이들의 목소리를 복원하는 역사 방법론이다

by HomeCareHacks 2025. 9. 4.

구술사는 전통적 기록의 한계를 보완하며 역사 서술의 지평을 넓힌다

역사학이 오랫동안 의존해온 전통적인 문헌 사료는 대개 권력자, 지배 계층, 문해력이 있었던 소수 집단의 시각에서 작성된 것이었다. 이에 따라 여성, 노동자, 농민, 식민지 피지배자, 소수자 집단 등은 공식 기록에서 배제되거나 왜곡된 방식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등장한 방법론이 바로 구술사다. 구술사는 특정 시기와 사건을 경험한 사람들과의 직접 인터뷰를 통해 생생한 증언을 수집하고, 이를 역사적 분석의 주요 자료로 삼는다. 이 과정은 단순한 회상의 수집을 넘어, 말하는 이의 감정, 목소리, 억양, 침묵의 맥락까지 포함한 총체적인 경험의 복원이기도 하다. 구술사는 문자 기록이 포착하지 못한 일상과 개인의 기억을 통해 역사에 다층적인 서사를 부여하며, 무명의 사람들로 구성된 ‘아래로부터의 역사’를 가능하게 한다. 이는 역사학의 민주화이자 포용성 확대의 한 방식으로 평가받고 있다.

기억의 불완전성과 주관성은 구술사의 약점이자 해석의 자산이다

구술사는 인간 기억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객관성과 신뢰성에 대한 논란이 항상 따라붙는다. 시간이 흐르면서 기억은 왜곡되거나 삭제될 수 있고, 말하는 이의 감정과 현재의 위치, 정치적 관점이 개입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 구술사 연구는 이러한 한계를 인식하면서도, 바로 그 ‘왜곡과 주관성’ 자체가 역사적으로 분석 가능한 가치 있는 자료임을 강조한다. 한 사람이 무엇을 어떻게 기억하고, 어떤 이야기를 중심에 두며, 무엇을 생략하거나 반복하는지는 그 사람의 삶의 위치, 정체성, 시대적 배경을 반영한다. 구술사는 단지 사실의 확인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개인이 어떻게 과거를 해석하고 의미화하는지를 탐구하는 창구이기도 하다. 따라서 구술사는 반드시 비판적이고 교차 검증적인 접근이 필요하며, 다른 사료들과의 비교 분석, 인터뷰 상황의 기록, 질문자의 영향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학문적 엄밀성이 요구된다. 구술은 일종의 ‘살아있는 사료’이며, 그 생동감을 포착하는 것이 구술사의 핵심이다.

구술사는 역사학의 윤리성과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는 장이다

구술사의 실천은 단지 새로운 자료를 확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역사학의 윤리적 차원을 더욱 부각시킨다. 인터뷰이는 단순한 정보 제공자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말하는 주체로서 존중받아야 하며, 그 발언은 하나의 서사적 권리를 갖는다. 따라서 구술사는 인터뷰의 방식, 대화의 맥락, 발언의 공개와 편집 과정 모두에 있어 투명성과 윤리적 책임을 전제로 해야 한다. 특히 트라우마를 동반한 사건—전쟁, 학살, 강제이주, 성폭력 등—에 대한 구술에서는 더욱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다. 구술사는 역사가가 단지 연구자가 아니라 경청자, 동행자, 때로는 치유자 역할까지 수행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실천은 역사학이 단지 과거를 설명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현재의 사회적 약자와 고통 받는 이들의 목소리를 역사적으로 인정하고 복원하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닌다. 결국 구술사는 과거의 침묵을 깨우고, 지금 이 순간에도 기억되어야 할 이야기를 역사로 새기는 방법론이며, 이는 역사학이 단지 학문을 넘어 삶과 세계에 참여하는 방식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