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국가 형성과 함께 등장한 새로운 통치 장치로서의 경찰
중세 유럽에서 치안 유지와 법 집행은 왕이나 귀족의 사병, 도시 자치 집단의 경비 역할에 의존하였지만, 근대 국가의 등장과 함께 경찰은 보다 전문화되고 체계적인 국가 권력의 일부로 정립되었다. 특히 17세기와 18세기 유럽에서는 중앙 집권적 행정기구가 성장하며, 질서와 규율을 유지하는 것이 통치의 핵심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경찰(police)'이라는 개념은 단순한 범죄 대응이 아닌, 인구 관리, 위생 감독, 도시 계획 등 사회 전반을 관리하는 포괄적 장치로 발전하였다. 프랑스의 앙시앵 레짐 하에서 경찰은 국왕의 의지를 지역 사회에 침투시키는 수단이 되었고, 프로이센에서는 공무원 체계의 일환으로서 매우 체계적인 경찰 기구가 운영되었다. 이러한 흐름은 계몽주의와 맞물려 '합리적 통치'의 구현이라는 명분 아래 더욱 정당화되었고, 경찰은 단지 범죄를 막는 존재가 아니라 국민을 '바르게' 만드는 국가의 팔이자 눈으로 기능하게 되었다.
산업화와 도시화 속에서 경찰의 역할은 더 복잡해졌다
19세기 산업혁명 이후 대도시의 인구 밀집과 빈곤층 확대는 기존의 비공식적인 질서 유지 방식으로는 더 이상 통제하기 어려운 상황을 초래했다. 런던에서는 1829년 로버트 필의 주도로 근대적 의미의 경찰 조직인 '메트로폴리탄 경찰(Metropolitan Police)'이 창설되었는데, 이는 오늘날 경찰 제도의 원형으로 간주된다. 이 조직은 제복, 계급, 명확한 명령 체계, 지역 순찰제 등을 갖추고 있었으며, 시민에게 보이는 방식으로 공권력을 행사함으로써 사회 통합의 수단이자 억제력으로 작동하였다. 경찰은 거리의 안전을 보장하는 역할뿐만 아니라, 파업 진압, 시위 통제, 공공 위생 문제 대응, 심지어 도덕적 생활 지도까지 수행하며 점차 국가의 손과 발이 되어갔다. 이처럼 경찰은 산업사회에서 질서 유지와 생산성 보장이라는 이중 목적을 수행하며, 자유와 통제의 경계를 끊임없이 조율하는 기능을 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경찰 권력의 한계와 그 남용 가능성에 대한 논의도 함께 성장하였다.
감시 사회의 도래와 경찰 권력에 대한 재해석이 필요하다
오늘날 경찰은 단순한 치안 유지 기관을 넘어, 디지털 감시 체계와 정보 수집망 속에서 통제와 감시의 핵심 축으로 기능하고 있다. CCTV, 위치 추적, 안면 인식 기술 등 기술 발전은 공공의 안전을 확보하는 동시에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양면성을 내포한다. 푸코는 경찰을 비롯한 근대 권력 장치를 '규율 권력'이라고 보았고, 감옥과 학교, 병원, 군대 등이 인간을 표준화하고 규범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시각에서 보면 경찰은 단지 물리적 강제력의 상징이 아니라, 현대 사회를 구성하는 인식과 규칙, 행위 양식을 끊임없이 형성하고 강제하는 존재로 해석된다. 경찰의 존재는 결국 '국가란 무엇인가', '공공성의 경계는 어디인가'라는 질문과 연결되며, 단지 제도의 문제를 넘어서 정치철학적 고민의 대상이 된다. 따라서 오늘날의 경찰 제도는 단순한 역사적 연원이 아니라, 권력의 작동 방식과 인간의 자유에 대한 고민이 교차하는 중요한 실천적 장치임을 역사적으로 조망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