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 전해지는 기억은 또 다른 형태의 역사다
전통적인 역사 연구는 문헌 사료에 의존해 왔다. 그러나 많은 사회, 특히 식민지배를 받았거나 제도적 기록에서 배제된 이들의 역사에서는 문헌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공백이 존재한다. 이러한 공백을 메우기 위한 방법론 중 하나가 바로 구술사다. 구술사는 특정한 사건이나 시대를 직접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과거를 재구성하는 작업이다. 이는 개인의 목소리를 통해 집단의 경험을 복원하며, 단순히 감정이나 추억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낸 주체로서의 기억을 역사로 끌어들이는 일이다. 구술 자료는 때로는 정확하지 않거나 감정적으로 왜곡될 수 있지만, 바로 그러한 점이 문헌 사료와 구별되는 구술사의 가치다. 살아 있는 목소리, 개인의 언어, 당시의 정서와 분위기까지 담을 수 있는 구술 기록은 역사학에 새로운 차원의 진실을 제공한다.
구술사의 수집과 활용에는 명확한 절차와 윤리가 요구된다
구술사는 단순히 ‘말을 받아 적는 것’이 아니다. 인터뷰 대상자의 선정, 질문의 구성, 인터뷰 환경의 조성, 대화의 유도 방식 등 모든 단계가 섬세한 준비를 필요로 한다. 예컨대 한국 현대사에서 6.25 전쟁이나 민주화 운동을 증언하는 사람들의 구술은 당시의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은 사회 내부의 갈등과 감정, 생활상을 복원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하지만 동시에 구술 자료는 화자의 기억 오류, 개인적 감정, 정치적 입장 등에 의해 왜곡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수집하고 해석하는 데에는 일정한 방법론적 기준이 필요하다. 구술사는 보완적인 자료의 성격을 갖기 때문에 다른 문헌 사료와의 교차 검증이 중요하며, 가능한 한 인터뷰 당시의 정황을 상세히 기록하고, 질문의 방향성이나 편향이 결과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반영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터뷰 대상자에 대한 윤리적 고려다. 그들의 이야기는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삶의 일부이며, 존중과 신뢰를 바탕으로 수집되어야 한다.
구술사는 억눌렸던 기억을 역사적 주체로 복원하는 힘이 있다
구술사는 단지 새로운 자료를 발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역사 속에서 소외되었던 이들의 기억을 사회적 담론의 중심으로 끌어올리는 작업이다. 특히 여성, 노동자, 소수민족, 농민 등 공식 기록에서 주변화되었던 이들의 이야기는 구술사 없이는 제대로 조명되기 어려웠다. 구술사는 이들에게 ‘말할 권리’를 부여하며, 단순히 객관적 진실이 아닌 ‘경험된 진실’로서의 역사에 접근하게 해준다. 이는 역사학의 민주화를 의미하며, 단일한 서사가 아니라 다중의 서사, 복수의 시선을 역사 속에 반영하는 데 기여한다. 또한 구술사는 교육과 지역 연구에서도 중요한 도구가 되며, 마을의 역사, 공동체의 변화, 일상생활의 문화 등을 살아 있는 형태로 복원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구술사는 단절된 기억을 잇고, 말해지지 않았던 과거를 들려주는 창구가 되며, 역사학이 인간의 삶을 보다 깊이 있게 이해하는 데 이바지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