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정약전과 자산어보 - 학문과 생태의 경계를 넘은 실학자의 해양 인식

by HomeCareHacks 2025. 8. 21.

정약전은 유배라는 제약 속에서 자연과 백성의 삶에 깊이 다가갔다

정약전(1758~1816)은 정약용의 형이자 조선 후기의 실학자로, 신유박해 이후 흑산도로 유배되어 남긴 『자산어보』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형제인 정약용과 함께 실학적 문제의식을 공유하면서도, 상대적으로 덜 조명받은 지식인이었으나 자연과학적 관심과 관찰을 토대로 실증적 지식을 체계화한 점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흑산도 유배는 그에게 정치적 좌절이었지만 동시에 생태와 민중 생활을 깊이 관찰할 수 있는 계기였다. 그는 단순히 물고기를 기록한 것이 아니라, 섬 주민들과 어민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수산 생물의 특징, 서식지, 채집 방식, 조리법 등 실생활에 기반한 정보를 광범위하게 수록하였다. 이는 단순한 과학적 관찰을 넘어서 백성과 자연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애정이 반영된 결과였다. 조선 후기 유학자들 가운데 드물게 해양 생물과 생태계에 주목했던 정약전의 태도는 유배라는 현실적 한계를 넘어서려는 지식인의 내면적 확장이라 할 수 있으며, 그의 『자산어보』는 당시 조선 사회의 자연 인식과 민중생활의 단면을 생생히 보여주는 귀중한 기록물이다.

자산어보는 과학, 민속, 실용 지식이 결합된 조선판 백과사전이었다

『자산어보』는 ‘자산’이라 불렸던 흑산도에서 집필되었으며, ‘어보’란 물고기를 기록한 책을 의미한다. 그러나 실제 내용은 어류뿐 아니라 해양 생물 전반, 예컨대 조개류, 해조류, 갑각류 등 광범위한 대상이 포함되며, 물고기의 생태, 형태, 맛, 활용법은 물론, 지역 주민들이 이를 어떻게 채집하고 소비하는지까지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또한 이 책은 단순한 관찰 기록이 아니라, 백성과의 대화를 통해 체득한 민속 지식과 생활 경험이 풍부하게 담겨 있어, 학문과 생활의 경계를 허무는 실학의 정수를 보여준다. 정약전은 한문과 한글을 병기하거나 속명을 함께 기록하는 등 일반 백성들도 활용할 수 있도록 구성하였으며, 이는 조선 지식인 중에서도 보기 드문 실용적 배려였다. 『자산어보』는 당대 유학 중심의 경전 해석이나 추상적 이론과는 거리가 멀며, 경험과 관찰에 기반한 실증주의적 태도를 분명히 드러낸다. 과학적 탐구 정신과 실생활 밀착형 지식이 결합된 이 저작은 오늘날에도 생물학, 민속학, 지역학 연구에 있어 중요한 1차 자료로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정약전의 학문은 생태적 시각과 민중 중심주의를 결합한 실천적 사유의 전형이었다

정약전의 사유는 단지 자연을 기록하는 데 머물지 않고,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실천적으로 탐구하고자 하는 태도에서 출발하였다. 그는 생물을 객체화된 연구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그것이 어떻게 사람들의 삶과 연결되어 있는지를 이해하고자 하였다. 예를 들어, 어느 생물이 계절마다 어디에 서식하는지, 그것을 채취하려면 어떤 도구가 필요한지, 잡은 생물을 어떻게 보관하고 조리하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서술한 것은 단순한 지식 축적이 아닌 생태-생활 공동체의 실천적 기록이라 할 수 있다. 정약전은 고립된 섬에서 백성들과 직접 부딪히며 그들의 언어와 경험을 존중하였고, 이는 당대 유학자들 사이에서 보기 드문 태도였다. 나아가 그는 유배라는 정치적 탄압 속에서도 자연을 향한 지적 호기심을 꺾지 않고, 오히려 그 속에서 인간과 환경의 조화를 모색하는 새로운 지식 지형을 개척하였다. 정약전의 학문은 고전 중심의 엘리트 지식에서 벗어나 생태적 감수성과 실용적 사고를 결합한 점에서, 조선 후기 실학의 확장된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의 사유는 오늘날 환경 문제와 생태 중심 패러다임 속에서도 여전히 유의미한 시사점을 던져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