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는 고구려 계승 국가로서 국제 질서 속 자율성을 추구했다
발해는 고구려 멸망 이후 동북아시아 북부에서 새롭게 등장한 국가로, 스스로를 ‘해동성국’이라 자칭하며 고구려의 문화와 정통성을 계승함을 명확히 했다. 발해의 대외 관계는 이러한 정체성을 국제적으로 인정받기 위한 외교적 전략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건국 초기부터 발해는 당나라를 비롯한 주변 국가들과 외교 관계를 수립하며 국제 질서에 편입되기를 원했으며, 이를 통해 자국의 존재와 위상을 강화하고자 했다. 특히 당과의 외교는 발해의 정치적 안정과 문화적 정체성을 국제적으로 드러내는 수단이 되었으며, 실질적으로 당과의 사신 교류는 정기적으로 이루어졌다. 동시에 발해는 일본, 신라, 거란 등과도 다자 외교를 전개하면서 자주성과 실리를 모두 확보하는 외교 전략을 펼쳤고, 이는 단순한 조공국이 아닌 동북아 주요 세력으로 발돋움하는 데 기여했다. 발해의 외교는 형식적 위계보다는 실질적 이익과 자국의 문화적 우월성을 표현하는 수단이었으며, 이를 통해 다원적 국제 질서 속에서 독자적 국가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했다.
해상 교역은 발해 경제 발전과 외교 다변화의 핵심 동력이 되었다
발해는 지정학적 이점을 활용하여 해상 교역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으며, 이를 통해 동북아 국제 교역망의 중요한 거점으로 성장하였다. 발해의 주요 항구는 중국의 등주, 일본의 하카타 등과 연결되어 있었으며, 이를 통해 비단, 도자기, 서적 등 고급 문물을 수입하고, 인삼, 모피, 말 등의 특산물을 수출하였다. 이러한 교역은 단순한 상업 활동을 넘어서 외교 관계의 기반이 되었고, 교역로를 따라 다양한 민족과 문화가 발해를 오가면서 다문화적 성격이 강화되었다. 특히 일본과의 교역은 발해의 외교 다변화 전략의 일환으로 매우 중요했으며, 이를 통해 당-신라 축 중심의 외교 질서에서 독자적인 외교 루트를 개척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었다. 발해의 선박 기술과 항해 능력은 그 시대 동아시아 최고 수준이었으며, 해상 교역을 기반으로 한 경제력은 국내 정치 안정과 군사력 강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결과적으로 발해는 교역을 통해 자원의 다양화뿐 아니라 외교적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었고, 이는 발해의 국제적 위상을 실질적으로 높이는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
발해의 외교 전략은 문화적 자긍심과 실리적 선택이 조화를 이루었다
발해의 외교는 단순히 강대국에 종속되거나 특정 국가에 의존하지 않는 자주성과 실리 중심의 전략이 돋보였다. 당과는 명목상의 조공과 책봉 관계를 유지했으나, 실제로는 대등한 외교 사절 파견과 문화 교류를 통해 상호 인정을 기반으로 한 교류가 이루어졌고, 일본과는 신라와 구분되는 독자적 외교 루트를 구축하여 발해의 독립성과 문화 우월성을 강조하였다. 또한 거란, 말갈 등 북방 유목 세력과도 실리를 중시한 유연한 관계를 유지하며 북방 정세에 주도적으로 대응했다. 이러한 다면적 외교는 단순한 생존 전략을 넘어, 발해가 문화국가이자 교역국가로서 국제적 역할을 수행하고자 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발해의 왕들은 이러한 외교를 통해 왕조의 위신을 높이고 국가 정체성을 내외부에 각인시켰으며, 국제 질서 속에서 발해만의 공간을 확보하고자 노력했다. 결국 발해의 외교 전략은 문화적 자긍심과 실리적 현실 감각이 결합된, 동아시아 고대국가 외교의 전형으로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