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는 송나라와의 외교를 통해 국제적 정통성과 문화적 정체성을 확보하였다
고려는 건국 직후부터 대중국 외교를 중요하게 인식하였으며, 특히 송나라와의 외교는 단순한 사대 외교가 아니라 문화적 정체성 확립과 국제 정통성 인정이라는 복합적 목적을 지녔다. 태조 왕건은 즉위 직후 후당과의 교류를 시작으로 중국과의 외교 채널을 적극적으로 열었고, 송이 중국을 통일한 이후에는 송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질서에 편입되는 것을 외교 전략으로 채택하였다. 이는 고구려-당 관계 이후 단절되었던 중국 중심 질서 속의 ‘문화국가 고려’라는 정체성을 회복하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송나라 역시 거란(요나라)과의 긴장 속에서 고려를 전략적 동반자로 인식했고, 고려는 이러한 외교 환경 속에서 문물 교류와 책봉 체제를 통해 실리를 취하고 명분을 얻는 데 성공했다. 결국 고려와 송의 관계는 고대 국가가 새로운 중세 질서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외교가 어떻게 정치적 정당성과 문화 정체성 형성에 기여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송과의 교류는 고려 문물 발전과 유교적 질서 확산에 큰 영향을 미쳤다
고려와 송나라 간의 외교는 단순한 외교 사절 파견에 그치지 않고, 광범위한 문화 교류와 기술 전파를 수반하였다. 송나라의 발달된 인쇄술, 제지술, 유학 사상 등은 고려에 전파되어, 고려대장경 편찬과 활판 인쇄술 발달의 토대가 되었다. 또한 송의 성리학은 고려 후기 지식인들에게 새로운 세계관과 정치 이념을 제공하며 점차 기존의 불교 중심 이데올로기를 대체해 나갔다. 무역에 있어서도 송과의 교류는 고려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었으며, 비단, 서적, 약재 등 고급 소비재의 유입은 고려 귀족문화의 세련됨을 가능하게 하였다. 나아가 송의 제도와 관료 조직, 법제에 대한 모방은 고려의 중앙 집권 체제 정비에도 일정한 영향을 미쳤으며, 과거제, 관리 등용, 유학 교육 강화 등 다양한 정책에 반영되었다. 따라서 송과의 외교는 단순한 외교사적 사건이 아닌, 고려의 문화·정치·경제 발전을 견인한 총체적 교류 과정으로 보아야 한다.
고려는 송과의 관계 속에서 자주성과 실리 외교의 균형을 지향하였다
비록 송나라와의 관계에서 고려는 책봉을 받고 사신을 파견하는 형식으로 외교를 전개하였지만, 이는 단순한 사대의 의미로 보기는 어렵다. 고려는 송과의 형식적 위계 속에서도 실질적으로는 대등한 관계를 지향하며 외교적 자율성을 유지하려 노력하였다. 예컨대 송과의 외교 문서에서 고려는 ‘신하’로 자처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송의 간섭을 허용하지 않았고, 특히 북방의 거란 및 여진과의 관계에서는 독자적인 외교 노선을 유지하였다. 또한 송나라가 거란과 화친하는 과정에서 고려가 자국의 안보를 위해 신중하게 중립 노선을 택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러한 점에서 고려는 국제 관계 속에서 외교적 명분과 실리 사이에서 균형을 모색한 중세 동아시아의 대표적 실용 외교 국가였다. 결국 고려와 송의 관계는 단순히 강대국과 약소국의 관계가 아니라, 문화적 공명과 실리적 판단이 교차하는 복합적 외교 모델이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