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하대는 중앙집권 체제의 균열과 지배 이념의 와해를 보여준다
8세기 후반부터 9세기 말까지의 시기는 신라의 하대로 불리며, 중앙집권 체제가 근본적으로 흔들리는 시기였다. 통일신라의 정치적 정점은 문무왕에서 성덕왕, 경덕왕에 이르는 시기에 이루어졌지만, 이후에는 왕위 계승 분쟁과 귀족 세력 간의 권력 다툼이 심화되면서 왕권이 급속히 약화되었다. 특히 진골 귀족 내부의 분열은 왕위 계승의 정통성을 훼손하였고, 그로 인해 빈번한 왕의 폐위와 암살이 반복되며 정치적 불안이 일상화되었다. 이러한 혼란은 중앙 정부의 행정력 저하로 이어졌으며, 지방에서는 중앙의 통제력이 사실상 무력화되었다. 아울러 중앙이 시행하던 토지제도와 조세 제도 또한 기능을 상실했고, 이에 따라 지방민들의 삶은 극도로 피폐해졌으며, 국가에 대한 충성심과 유대감은 점차 사라져 갔다. 이처럼 신라 하대는 중앙권력의 실질적 해체와 국가 질서의 와해 과정을 생생히 보여주는 시기였다.
지방 호족 세력은 몰락한 중앙 권력을 대체하는 새로운 주체로 부상하였다
중앙 정부의 통제가 약화되자 지방에서는 새로운 정치 주체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주로 지방의 토착 세력이나 무력 기반을 가진 세력으로, 이후 ‘호족’이라 불리며 향후 고려 건국의 기반이 되는 집단으로 성장하게 된다. 호족들은 중앙으로부터 실질적인 자율권을 획득한 상태에서 지역 행정, 군사, 경제를 독자적으로 운영하였고, 자신만의 성을 쌓고 사병을 거느리는 독립적인 존재로 자리잡았다. 이들은 불교를 통해 권위를 정당화하거나, 중국의 제도를 수용해 문치의 외양을 갖추기도 하였으며, 일부는 스스로 왕을 칭하고 독자적인 정치 질서를 시도하기도 하였다. 예컨대 견훤의 후백제, 궁예의 후고구려는 이러한 호족 세력이 지방에서 자치적 정치체를 이룬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러한 현상은 단순한 반란이 아니라, 중앙 권력의 공백을 채우기 위한 정치적 재편의 한 형태였으며, 한반도 사회가 새로운 정치 질서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흐름이었다.
신라 하대의 혼란은 고려 건국이라는 새로운 체제로 이어지는 과도기였다
신라 하대의 혼란은 단지 기존 체제의 붕괴로 끝나지 않았다. 그것은 또한 새로운 사회 질서의 도래를 알리는 과도기적 상황이었다. 전국 각지에서 등장한 호족들은 상호 경쟁과 동맹을 반복하며 세력 구도를 재편하였고, 이 과정에서 정치적 통일을 위한 필요성이 점차 부각되었다. 특히 호족 출신 왕건이 고려를 건국하고, 다른 호족들을 포섭하거나 정복하면서 중앙집권적 통일 국가를 재건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하대의 경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왕건은 호족들의 현실을 이해하고 그들과의 협력을 중시하였으며, 이는 고려 초 체제가 안정적으로 정착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따라서 신라 하대는 한 사회가 붕괴와 혼란을 거치며 내부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새로운 정치 주체들이 등장한 시기로 이해할 수 있다. 이 시기의 혼란과 다원성은 고려라는 새로운 국가 모델의 탄생을 자극하였으며, 한국 중세 정치 구조의 뿌리를 형성한 중요한 분기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