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국가 형성은 권력의 집중과 정당화의 과정이었다
국가는 자연발생적인 조직이 아니라 특정한 역사적 조건 속에서 등장한 정치적 산물이다. 초기 국가는 대체로 농업 생산력이 증가하고 인구가 밀집되며, 자원을 효율적으로 분배하고 외부로부터 공동체를 방어할 필요가 커진 결과로 형성되었다. 이 과정에서 누군가는 자원을 관리하고 질서를 유지하는 권한을 가져야 했으며, 이로 인해 권력이 발생하고 정당화되었다. 수메르 도시국가, 이집트의 파라오 체제, 중국의 봉건 왕조, 마야와 잉카 제국 등은 모두 일정한 형태의 중앙집권 권력을 특징으로 하였다. 그러나 권력은 단순히 무력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신성성, 전통, 예언, 혈통 등 다양한 상징적 장치를 통해 정당화되었다. 예컨대 파라오는 신의 화신으로, 중국의 황제는 하늘의 명을 받은 천자(天子)로 간주되었고, 유럽의 왕은 신의 대리인으로 이해되며 ‘왕권신수설’이 통용되었다. 이처럼 국가는 단순한 행정체계가 아니라, 정당한 권위의 근거를 문화적·종교적으로 끊임없이 구축해야만 했다.
근대의 도래와 함께 권력의 기반은 신에서 국민으로 이동했다
근대 이전의 권력은 주로 신성과 혈통에 의존했지만, 17세기 이후 정치사상과 시민 혁명을 통해 권력의 정당성은 점차 '국민'에게서 도출되기 시작했다. 홉스, 로크, 루소로 이어지는 사회계약론은 국가 권력이 개인의 동의와 계약에 기반해야 한다는 사상을 전개하였으며, 이는 절대왕정의 이념을 비판하고 새로운 정치 질서를 상상하는 이론적 토대를 마련했다. 특히 18세기 프랑스 혁명은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원칙을 실제 정치에 적용한 결정적 사건이었다. 이로 인해 군주 중심의 권위는 무너지고, 헌법과 선거, 법치주의에 기반한 권력이 정당성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단번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며, 왕정과 공화정, 독재와 민주주의가 얽힌 복잡한 과정을 통해 점진적으로 진행되었다. 또한 권력의 원천이 국민으로 이동하면서도, 권력은 여전히 불평등하게 분배되었으며, 계급·성별·인종에 따라 정치 참여의 기회가 달랐다는 점도 역사적으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국가 권력은 어떻게 정당화되고 있는가
현대 국가에서 권력은 법률, 선거, 제도적 절차를 통해 정당성을 획득한다. 그러나 이러한 외형적 장치만으로 충분하지 않으며, 권력이 지속적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들의 실질적인 동의와 신뢰가 필수적이다. 따라서 오늘날 권력의 정당성은 경제적 성과, 정책의 투명성, 시민 참여, 인권 보장 등의 요소와 결합되어야만 한다. 예를 들어 선거를 통해 형식적 정당성을 확보한 정권이라도 권위주의적 통치를 지속할 경우, 국민의 지지를 잃고 정당성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또한 글로벌화와 디지털 사회의 도래로 국가 권력의 범위는 점점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으며, 국제기구나 기업, 시민단체와 같은 다양한 행위자들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상황에서 국가는 끊임없이 권력의 기반을 재정립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해 있다. 특히 정보화 시대에는 여론 형성, 미디어 신뢰, 디지털 감시와 자유권의 균형 등 새로운 방식의 권력 정당화가 요구되고 있다. 결국 국가의 권력은 과거와 달리 정적이지 않고, 시대와 사회적 기대에 따라 유연하게 조정되어야 하는 실체로 변화하고 있으며, 이러한 맥락 속에서 역사학은 국가와 권력의 본질을 다시 묻고 그 정당성의 변천사를 비판적으로 고찰하는 중요한 도구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