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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국가 형성과 국민 개념의 탄생 - 국민이라는 이름의 발명

by HomeCareHacks 2025. 8. 20.

근대 이전 정치 공동체와 근대 국가의 차이

근대 이전의 정치 공동체는 봉건적 질서 혹은 제국의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구성원들의 정체성은 혈연, 종교, 계급, 지역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왕은 신의 대리자로 여겨졌고, 백성은 통치의 대상일 뿐 주체적 정치 행위자는 아니었다. 그러나 17세기 이후 유럽을 중심으로 전쟁, 상업의 확대, 인쇄술의 발전, 절대왕정의 팽창 등의 변화가 맞물리며, '국가'라는 개념이 전혀 다른 차원으로 정립되기 시작했다. 특히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은 근대 국제 질서의 시작으로 간주되며, 주권 국가의 독립성과 영토 경계를 인정하는 기준이 마련되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국가는 군주 개인이 아닌 일정한 영토를 기반으로 한 법적, 행정적 시스템으로 전환되었고, 점차 국민이라는 개념과 결합하여 새로운 정치 주체를 형성하게 된다. 이로써 국가는 단순한 지배 장치가 아닌, 국민이라는 상상의 공동체를 기반으로 정당성을 갖추려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국민’이라는 개념은 어떻게 발명되었는가

‘국민(nation)’이라는 개념은 역사적으로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특정한 역사적 조건 속에서 구성된 상상의 산물이다. 베네딕트 앤더슨이 제시한 바와 같이, 국민은 ‘상상의 공동체’로서 서로 얼굴을 모르지만 자신들이 같은 집단에 속한다고 믿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이 믿음은 언어의 표준화, 교육 제도의 확립, 인쇄 매체의 보급 등을 통해 만들어진다. 18세기 계몽주의와 시민 혁명은 이러한 변화를 가속화시켰으며, 특히 프랑스 혁명은 국민이라는 개념을 근대 정치의 핵심으로 끌어올렸다. 국민은 이제 군주의 신민이 아니라, 주권을 보유한 정치적 주체가 되었고, 국가는 국민의 의지를 실현하는 기관으로 정당성을 부여받았다. 이는 헌법, 의회, 보통교육, 국어의 제도화, 국민군 등 다양한 장치를 통해 구체화되었고, 시민권이라는 개념과 맞물리며 개인을 정치 공동체 속에서 규정하는 새로운 틀을 마련했다. 다시 말해, 국민이라는 개념은 자연스럽게 존재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 필요에 따라 구성되고 제도화된 결과물인 것이다.

국민 개념의 역사적 의의와 그 한계

국민 개념의 등장은 근대 국가의 탄생과 함께 인간의 권리, 참여, 평등의 이상을 현실 정치에 반영할 수 있는 장치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전환점이다. 이는 특히 민주주의, 국민 주권, 복지국가 모델을 가능케 한 이론적 기반이 되었고, 이후 탈식민주의 국가들이 민족국가 모델을 채택하는 데에도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이 개념이 항상 포용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국민 개념은 내부의 동질성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사회 집단—예컨대 여성, 식민지인, 이민자, 소수 민족—을 주변화하거나 배제하는 도구로도 작동해왔다. 국민국가의 형성 과정에서 일어난 언어의 통일, 역사 교육의 표준화, 국경의 고정화 등은 종종 폭력적 동화나 억압의 역사와 맞닿아 있다. 또한 글로벌화된 현대 사회에서는 국민이라는 단위가 과연 여전히 유효한 정치적 단위인지에 대한 논의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디아스포라, 다문화 사회, 트랜스내셔널한 노동과 자본 흐름 속에서 국민 개념은 과거와는 전혀 다른 도전에 직면해 있으며, 역사학은 이러한 변화 속에서 국민 개념의 진화와 그 정치적 함의를 끊임없이 재검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