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불안정과 행정 시스템의 붕괴
서로마 제국의 몰락은 단기간에 이루어진 사건이 아니라 수세기에 걸친 누적된 위기의 결과였습니다. 특히 3세기 위기 이후, 로마 제국은 정치적 혼란과 황제 교체의 반복 속에서 안정된 통치력을 상실하였고, 디오클레티아누스와 콘스탄티누스의 개혁에도 불구하고 지속 가능한 정치 구조를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서로마의 마지막 시기에는 황제가 유력 귀족이나 군사 세력의 꼭두각시에 불과했으며, 중앙 행정력은 붕괴되고 지방 분권화가 심화되었습니다. 또한 로마 시민권의 확장과 더불어 군대의 전문성이 약화되고, 게르만족 등 이민족 출신 용병이 다수를 차지하면서 국가 정체성 자체가 흐려졌습니다. 이민족 장군들이 실권을 쥔 가운데, 최종적으로는 게르만계 장군 오도아케르가 마지막 황제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를 폐위시키며 서로마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경제 쇠퇴와 도시 문화의 해체
로마 제국의 경제 기반은 노예제와 지중해 무역에 기반했으나, 확장 정복의 한계가 드러나며 노예 수급이 줄고, 내륙 교역로의 붕괴로 인해 경제 활동이 크게 위축되었습니다. 특히 서로마 지역은 동로마에 비해 농업 기반이 약하고 상업 활동도 뒤처져 있었으며, 이로 인해 세수 확보에 실패하고 국방과 행정을 유지할 재정적 여력이 점점 사라졌습니다. 도시의 기능은 행정과 상업의 중심이었지만, 세금 부담과 방어력 약화로 인해 점차 쇠퇴하였고, 귀족들은 시골 대농장으로 이동하여 독자적인 자치권을 형성하는 데 집중하게 됩니다. 이는 후일 중세의 장원제도로 이어지는 구조적 변화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또한 지식인의 수도 감소와 교육 기관의 축소는 고전 학문 전통의 단절을 가져왔으며, 이는 '암흑시대'라는 중세 초기의 이미지 형성에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게르만족의 이동과 중세 질서의 형성
서로마의 붕괴 이후, 유럽은 일시적 무정부 상태에 빠졌지만 곧 새로운 질서가 형성되기 시작합니다. 중심에는 게르만족의 여러 부족 국가들이 있었으며, 이들은 로마 문명을 완전히 파괴한 것이 아니라 일정 부분 수용하고 변형하여 자신들의 체제 안에 통합하였습니다. 서고트족은 스페인 지역에, 프랑크족은 갈리아 지역에, 반달족은 북아프리카에, 동고트족은 이탈리아에 정착하여 왕국을 수립하였고, 이들은 대부분 로마법과 기독교를 받아들이며 문화적 계승을 시도하였습니다. 특히 프랑크 왕국은 클로비스의 개종을 기점으로 로마 가톨릭과의 연합 관계를 강화하였고, 이는 중세 유럽의 교회 중심 정치 구조를 미리 보여주는 사례였습니다. 이처럼 중세는 단절이라기보다는 새로운 질서의 탄생으로 보는 해석이 최근 역사학계의 주요 흐름입니다. 동로마 제국(비잔틴)은 여전히 고전 문명의 계승자 역할을 하였고, 로마 가톨릭 교회는 중세 전반의 문화·교육·정치의 핵심 기관으로 부상하였습니다. 따라서 서로마 제국의 멸망은 고대 로마의 종말이자, 중세 유럽의 태동이라는 이중적 의미를 지닌 사건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정치 체제, 사회 구조, 문화 패턴은 완전히 새롭게 재편되었으며, 이는 근대에 이르기까지 유럽 문명의 기틀을 형성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