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되지 않은 역사를 복원하려는 시도에서 구술사는 출발한다
역사란 과거에 일어난 사실들을 바탕으로 서술되는 것이지만, 그 사실들이 모두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많은 경우, 기록으로 남은 역사는 권력자의 시선이나 제도권의 중심부에서 구성된 협소한 시각에 기반하고 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자 등장한 것이 바로 구술사이다. 구술사는 문서로 남겨지지 않은 개인의 기억과 경험을 통해 역사를 재구성하고자 하는 역사 연구 방법론으로, 주류 역사 서술에서 배제되어 온 주변부의 목소리를 복원하는 데 목적이 있다. 특히 식민지 경험, 전쟁 속 민간인의 삶, 이주와 노동의 역사 등은 문서 중심의 전통적 역사학으로는 온전히 포착되기 어려운 영역이며, 이때 구술은 생생한 삶의 언어로 역사 속 공백을 메우는 역할을 한다. 구술사는 단순한 인터뷰 기록이 아니라, 인터뷰 대상자의 맥락, 감정, 말투까지 포함하여 그 시대의 정서와 감각을 함께 담아내려는 시도이다. 이는 단지 ‘자료의 수집’이 아니라, 역사 인식의 범위를 확장하고, 누구나 역사 속 주체가 될 수 있다는 민주적 관점을 실천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따라서 구술사는 과거를 말하는 방식뿐 아니라, 현재 우리가 어떻게 과거를 기억하고 해석해야 하는지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연구이기도 하다.
구술은 개인의 기억이자 사회의 기억이며, 그 안에 숨겨진 진실이 존재한다
구술사는 개개인의 삶을 중심에 둔 역사 서술이라는 점에서, 전통적인 사건 중심의 역사와는 궤를 달리한다. 이는 특정한 전쟁이나 혁명, 정치 제도의 변화보다는, 그 안에서 살아간 개인들의 경험과 감정을 역사적 탐구의 중심에 놓는다. 예를 들어 한국전쟁 당시 피란민의 기억, 광부나 간호사로 독일에 이주한 노동자의 이야기, 여성의 가사노동 경험 등은 구술을 통해 비로소 역사 속에서 의미 있는 목소리를 갖게 된다. 이러한 구술은 개인의 고백인 동시에, 동시대 사람들과 공유한 경험의 집합이며, 사회적 맥락 속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물론 구술은 주관적이며 때로는 과장되거나 왜곡되기도 하지만, 그 속에 담긴 감정과 표현은 문서에서 얻기 어려운 역사적 진실의 단면을 보여준다. 또한 구술사는 단지 과거를 회고하는 작업에 머물지 않고, 그 회고가 현재의 정체성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예를 들어 이산가족의 구술은 분단이라는 현재적 상황과 긴밀히 연결되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구술은 오늘날의 인권 담론과도 직접적인 접점을 가진다. 이처럼 구술은 기억의 수단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 투쟁과 정치적 요구를 반영하는 역사적 언어이기도 하다. 따라서 구술을 듣고 기록하는 행위는 곧 정치적, 윤리적 책임을 동반한 역사학적 실천이다.
기억을 역사로 전환하기 위한 책임 있는 서술이 필요하다
구술사는 누구나 말할 수 있는 권리를 전제로 하지만, 동시에 그 말을 어떻게 해석하고 서술할 것인지에 대한 학문적 책임도 함께 따른다. 구술이 단지 '말해진 것'에 그친다면 그것은 일기장이나 회고록과 다르지 않다. 그것을 '역사'로 만들기 위해서는 말의 맥락과 배경, 시대적 조건, 사회적 위치, 그리고 그것이 말해지는 현재의 의미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 이를 위해 연구자는 단순한 기록자가 아니라, 해석자이며 동시에 윤리적 중재자이기도 하다. 특히 고통의 서사, 트라우마, 억압의 기억을 다룰 때에는 말하는 사람의 존엄과 심리를 해치지 않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하며, 그 말이 왜 지금 말해졌는지를 이해하는 감수성이 필요하다. 구술사는 단순히 과거를 복원하는 작업이 아니라, 기억을 통해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실천이다. 우리는 기록되지 않은 기억을 통해 공식 역사에서 지워졌던 진실을 다시 바라볼 수 있으며, 그것은 사회 정의의 회복과도 연결된다. 결국 구술사는 ‘기억의 역사학’이자, ‘치유의 역사학’이며, ‘참여의 역사학’이다. 문서화되지 않은 다수의 목소리가 역사 속에서 존중받고 기록될 때, 비로소 우리는 보다 온전한 과거의 진실에 다가갈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현재를 더 깊이 있게 이해하는 단단한 발판이 되어줄 것이다.